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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ideabooster 2023. 12. 27. 17:24

사진: Unsplash 의 Ahmad Odeh

 
 
엄마의 움직임이 조금씩 커진다. 지난번에 머리를 살짝 아주 살짝이어서 "그랬나?" 하는 정도로 움직였다면 오늘은 그것보다 한 다섯 배 정도 크게  움직였다. 지난 크리스마스날 아주 살짝 여러 번 움직였던 손이 움켜쥐려는 듯 한 번 힘을 크게 주었다. 왼발과 오른발의 움직임이 잦아지고 있고, 눈을 꽤 오랫동안 뜨고 있는 때도 있다고 한다. 내가 그 감격적인 장면을 못 봐서 아쉽다. 크리티컬하게 걱정할 시점은 지난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된다. 감사하다.  
 
"휴~" 
 
병원에 계시는 간병인들은 조선족이다. 그분들이 나에게는 요정처럼 보인다. 키가 작은 것도 있지만,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덕분에 엄마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다. 엄마를 돌봐주시는  분은 항상 웃으시며 엄마의 상태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신다. "아침에 눈을 한참을 뜨고 계셨어요"라고 말씀해 주시고, "욕창이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나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내가 볼 수 없는 시간의 것들을 누군가 봐주고 말해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인 것 같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나에게 그분들은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간 우리네 삼촌과 고모와 같아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떠난 우리의 친척들... 그들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온 누군가의 삼촌과 고모일 것이다. 수많은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고 살아온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우리 고모도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 공부를 위해 고모 집에서 살 때 고모의 삶은 고단했다. 다행히 내가 살던 때 하나님이 축복을 많이 해주셔서 더 이상 고단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아마 내가 그 요양원에서 보는 분들 중에는 몇십 년이 지나면 우리 고모처럼 부자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교회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서 놀고 들어오는 길에 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이 길을 물었다. 나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에 일부 한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에 화가 났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렇게 인사를 하도록 가르쳤을 것이다. 나도 외국에 가면 이방인이다. 무언가 몰라서 물어볼 때가 많다.   
 
한 번은 미국의 커다란 공항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인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규모의 공항이었고, 갑자기 게이트가 바뀌는 바람에 나는 새로운 게이트를 찾아서 가야 했다. 워낙 큰 공항이라서 공항 내 열차를 타고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 내려야 했다. 그때 어리바리한 내 모습을 보고 한 미국인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열차를 타는 곳까지 직접 안내해 주었다. 그 사람은 나와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고 탑승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는 데도. 그때 난 그녀처럼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냥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인사인 "Thank you"를 했을 뿐이다. 그 미국인도 나에게 왜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지 않냐고 나를 나무라지 않고 "You're welcome."하고 뒤돌아 서둘러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 미국인에게 경험했듯이 인간은 그 누구나 평등하다는 명제가 통용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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