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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ideabooster 2023. 12. 18. 07:46

인생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엄마는 가장 피하고 싶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를 당면하고 있다. 그래서 난 옆에서 엄마가 좌절하지 않도록 힘을 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우리 엄마는 더 열심을 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엄마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의학적 지식이 없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막막하다. '번역을 의학 쪽으로 했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급 밀려온다. 건축학과 기계 쪽 논문을 주로 번역해서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판단을 내릴 때 너무 힘이 든다. 
 
내가 아는 분 중에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만한 분들이 내가 판단하기에 두 분 정도 된다.  그분들과 15년 이상을 함께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긴 특질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분들이 나에게 "나 어떤 사람이야"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 번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이 전화를 했다. 나더러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그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작업했던 건설기술연구원 박사님을 언급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나한테 그분을 어떻게 아는지 되물었다. 그래서 그 분과 작업을 15년 이상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곧바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건설기계연구원에 계신 박사님인데, "마이애미에 가서 자가부상열차 팔았어요. 독일 학회에서 발표해요."라며 말을 하셨다. 가끔 그분들이 나에게 "우리가 함께 작업한 지도 10년이 넘었네요" 하며 인사를  하면 그 세월을 되돌아본다.
 
내 이름으로 된 논문은 없지만, 그런 분들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긴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에게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라는 말을 하며 다면적으로 사고를 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사고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 주는 분들을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세브란스 심장혈관내과의 엄마 주치의 여의사와 처음 면담하고 난 느낌은 그녀가 우리 엄마를 코호트의 한 실험 대상 정도로 밖에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난 그 여의사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스텐트 시술이 잡혔던 그날에 나는 아침부터 가서 퇴원을 해야 한다고 했고, 그 여의사는 울면서 병실에서 나오는 나에게 "환자 가족이 그렇게 완강하며 저희도 할 수 없죠."라며 큰언니한테 말을 했다. 그러며 나를 보더니 "울 일 아닌데, 엄마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하는 시술인데." 그러더니 "심장을 못 열어봐서 아쉽네."라고 했다. 우리 엄마도 그 시술을 하기 싫다고 나한테 전화를 했었기 때문에 누구를 위한 아쉬움인지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에 퇴원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수요일에 엄마를 보러 갔을 때에도 간호사는 나에게 퇴원 서류가 필요한지 물었다. 그런데 목요일에 갔더니 시술이 되어 있었다. 10월 19일 시술 후 6-7시간 후 우리 엄마는 뇌출혈로 의식불명상태에 빠졌고, 여전히 의사들의 기준에 의해서는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그 여의사는 우리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약물로 간 수치, 콩팥 수치, 폐 수치를 정상 수치로 맞추며 굉장히 유능한 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잘못된 의학적 판단으로 한 사람은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한 가족의 삶은 피폐해지고, 나는 너무 불행하다. 사람의 생명을 그딴 식으로 다루는 사람이 의사라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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