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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꼬 할머니

ideabooster 2023. 12. 28. 07:48

사진: Unsplash 의 Hillary Ungson

 

미국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이 있다. 그중 미나꼬 할머니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할머니는 일본인이다. 젊은 시절 교수인가 엔지니어인가 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다고 했다. 내가 있었던 곳,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살았던 동네의 특징일 것이다. 인종의 구분 없이 백인, 동양인들이 뒤섞여 살았다. 그 할머니와 가장 친한 사람은 백인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이름은 메리디스였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닐 수도...  

 

왜 미나꼬 할머니가 기억에 남을까? 

일본인이라서?... 난 한국 사람이고, 일본인에 대한 남다른 혐오 때문에? 아니다. 난 일본인에 대한 혐오는 가지고 있지 않다.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 있다. 일본 침략은 일본인 전체가 아닌 권력을 잡은 일본의 대표들이 내린 결정이었고, 그 소수의 사람들이 한국에 가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성인들 중에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은가. 스키너의 행동심리에서도 밝혀졌듯이 인간에게 완장이 채워지는 그 순간... 상위의 권위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부의 지시를 따른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가.

 

다시 미나꼬 할머니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그분의 생각 때문에 그분을 기억한다. 미나꼬 할머니는 교회에서 만났다. 나는 "교회는 이래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다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 교회의 모든 사정을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띵'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왜 그럴까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기준으로 그 교회를 재단했고,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해 판단할 때 내가 그 전후상황을 모두 알지 못하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내가 노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준 분이다. 노인은 삶을 오래 살았고, 젊은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옳음과 그름이 없어라고 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법과 도덕이 존재하는 것은 옳고 그름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젊은이들의 생각의 기준이 편향되어 있을 때 그들의 지혜의 한 마디는 청년들에게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길을 터준다. 

 

할머니는 일흔을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페닌슐라 오케스트라의 합창단원으로 일하셨다. 한 번은 자신의 공연이 있는데 함께 가자고 나를 초대해 주대해 주셔서 미국의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지역사회를 위한 오케스트라였다. 젊은 단원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단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대에 섰다.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노령이신 분들은 앉아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서서, 나이 드신 분들은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날 그곳에서 받았던 감동은 노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내는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주지휘자의 공연 사이에 부지휘자가 지휘를 했다. 젊은 부지휘자가 무대로 나왔다. 그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모든 악기가 새로 조율된 듯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에 매료되었다.

 

"주지휘자의 지휘보다 훨씬 나은데...." 

 

음악을 녹음해서 들었다면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솔직히 부지휘자의 지휘에 감동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주지휘자님의 성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지휘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지휘를 했다고 하면 비교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같이 일반인의 귀에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면 본인도 아셨을 텐데 왜 그러셨을까? 

 

나이가 지긋하신 그분의 부지휘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국의 문화 때문이었을까? 주지휘자는 부지휘자의 연주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인인 나만 그랬을까?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조금 만의 노력으로 타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내고, 누군가는 죽어라 노력해도 그것의 반도 못 따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성과 즉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보게 되면 나처럼 생각하기 쉽다.

 

"부지휘자가 주지휘자가 되어야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이치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고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못 하는지... 내가 저 사람보다 무언가를 못 한다고 열등감을 느끼며 마음의 상처는 곪아가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까. 그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집주인 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딸의 학교에 초등학교 때 참관수업을 갔는데 참 가관이 아니었어.... 처음에는 왜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들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미국이 가진 힘인 것 같아".

 

나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말속에 어떤 진실이 들어있음이 느껴진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또 그런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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